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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윤찬이는 윤동주와 릴케를 스스로 찾아서 읽었죠

By 2022-08-058월 17th, 2022No Comments

2020년 2월 10일 오전 서울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초동 캠퍼스에서 손민수(왼쪽) 피아니스트와 임윤찬 피아니스트가 본지와인터뷰를 갖고 있다. /장련성 기자

피아니스트 손민수(46)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올해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우승한 제자 임윤찬(18)을 처음 만난 건 5년 전이었다. 2017년 1월 한예종 부설 한국예술영재교육원 입학 오디션을 보러 온 당시 열세 살 소년 윤찬은 하이든 소나타와 리스트의 ‘메피스토 왈츠’를 연주했다. 그때 손 교수의 눈에 들어온 모습이 있었다. 손 교수는 19일 인터뷰에서 “음악적 완성도는 지금과 비교할 수 없겠지만, 그 나이에도 전혀 당황하거나 긴장하는 기색이 없었다. 흔들림 없이 음악에만 집중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영재원에 입학한 임윤찬은 그때부터 손 교수의 제자가 됐다.

제자 임윤찬은 2019년 윤이상국제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일찍부터 ‘차세대 조성진’ ‘피아노 신동’으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실은 지독한 ‘연습 벌레’라는 것이 스승의 귀띔이다. 손 교수는 “이번 콩쿠르 기간에도 윤찬이가 새벽까지 연습을 거듭한 뒤 궁금증이 남으면 문자로 보내는 일이 다반사였다”며 웃었다. 반 클라이번 역대 최연소 우승은 철저한 자기 주도형 학습의 산물인 셈이다.

평소 손 교수는 임윤찬에게 피아노 지도는 물론, 독서 리스트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손 교수는 “클래식 작곡가들이 많은 영향을 받았던 괴테와 쉴러 같은 문호들의 작품과 시집을 추천했는데, 나중에는 윤찬이가 스스로 윤동주와 릴케·하이네의 시집을 찾아서 읽었다”고 말했다. 반대로 블랙홀에 대한 과학 기사들을 보내주기도 했다. 손 교수는 “음악이 단순한 기교가 아니라 예술이라면 마땅히 세계를 바라보는 눈을 키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손 교수의 관심사가 이렇듯 기교 자체에 함몰되지 않는 이유가 있다. 그는 미국 보스턴의 명문 뉴잉글랜드 음악원 유학 시절에 ‘건반 위의 철학자’로 불리는 명피아니스트 러셀 셔먼(92)을 사사했다. 셔먼은 음악 전반에 대한 철학적이고 깊이 있는 통찰을 보여주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음악은 9시부터 5시까지의 일과를, 돈에 대한 갈망을, 어리석은 욕망으로 인한 잠식과 한계를 거부한다”는 ‘피아노 이야기’의 구절이 대표적이다. 이들 사제(師弟)에게는 흠결 없는 기술적 완결성을 중시하는 한예종의 풍토와 셔먼의 인문학 정신이 공존하는 셈이다.

출처 : 중앙일보 https://www.chosun.com/culture-life/culture_general/2022/06/21/DR6HPJKNY5FSBOERTAG3WTAQ6I/